"퇴근이란 말이 나와?" 쇠파이프로 협박·폭언

김아영, 조영익 입력 2020.07.20. 21:04 수정 2020.07.20. 21:40 

        
      
       

[뉴스데스크] ◀ 앵커 ▶

우리 사회, 어렵고 힘든 일터라면 이주노동자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마다하는 일터지만 그들에겐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인데요.

◀ 앵커 ▶

하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 계약한 만큼의 월급을 받지 못해도 법에 호소하기 어렵고 또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노예 계약이라고 불리는 '고용허가제' 때문인데 그 실태를 먼저 김아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충남 부여의 한 비닐하우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오후 6시, 일을 마무리하려는 이주노동자들 앞을 갑자기 누군가가 막아섭니다.

이들을 고용한 한국인 부부입니다.

[사업주 A씨] "너 인마, 한 시간씩 더 해!"

[사업주 B씨] "니 물량을 맞춰야 돼. 오늘도 조금 가가지고 경매가 전화 와, 한 시간만 더해."

[이주노동자 C씨] "힘들어요…"

계약에도 없는 갑작스런 추가 근무, 이주 노동자들이 힘들다고 하자 부부는 갑자기 폭언을 퍼붓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위협합니다.

[사업주 A씨] "이런 XXX가! (야! 하지 마! 빨리 들어가!)"

월급을 안 주겠다고 협박을 하다가 마침내 기숙사에서 쫓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사업주 A씨] "쌀이고 뭐고 다 사먹어 이제. (전기 끊어!)"

[사업주 B씨] "니가 사장이야? 우리가 사장이야!"

업주가 쫓아내겠다고 하는 기숙사입니다.

비닐하우스로 얼기설기 대충 지어놓은 집입니다.

싱크대는 집 밖으로 나와있고 위생상태도 엉망입니다.

이런 기숙사에 식사를 제공하는 대가로 업주는 한 달에 13만 원씩 받아갔습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차라리 그만두겠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합니다.

[이주노동자 C씨] "두 명 가고 싶어요. (어딜 가) (계약 해지) 사인 주세요."

하지만 단칼에 거절입니다.

[사업주 B씨] "(합의) 사인은 없어. 내가 돈 주고 너를 초청했어. 그래서 네가 캄보디아에서 여길 온 거야."

[사업주 A씨] "니들 계속 여기서 놀아도 싸인 안 해줘!"

노동자들이 오갈 데 없는 사정이란 걸 이용해 걸핏하면 해고하겠다 협박하는 곳도 많습니다.

충남 논산의 한 농장.

하루 10시간씩 일하고도 손에 쥐는 돈은 160만 원 남짓입니다.

쉬는 날은 겨우 2주에 하루꼴, 농장주는 휴일을 더 보장해주기는커녕 대뜸 하루에 2시간씩 더 일하라고 통보합니다.

[사업주 D씨] "180만 원. 6시부터 6시까지. 6시 반 시작 6시 반 끝. 너 할거야? 야. 따로 따로. 니네 둘 같이 안 해. (안 해요) 안 해? 가."

일한 만큼 돈을 달라 하면 해고 위협, 계약대로만 일하겠다 하면 방 빼라는 위협, 업주들이 이렇게 이른바 '갑질'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고용허가제' 때문입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합법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이렇게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가 동의 안 하면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마음대로 벗어나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업주에게 많은 권한과 재량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론 이주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또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1차 허가기간인 4년 10개월간 일한 뒤에도 계속해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일단 모국으로 출국한 뒤 다시 들어와야 하는데 계속 일하게 해줘도 되겠느냐, 생사를 가르는 이 결정권을 처음 고용했던 사업주가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뎌야만 합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고국 방글라데시를 떠났던 '시물' 씨의 이야기를 한 번 직접 들어보시죠.

◀ 시물/이주노동자 ▶

저는 방글라데시 사람 '시물'입니다.

저는 올해 31살입니다.

제게는 몸이 편찮으신 부모님과 누나, 남동생이 있습니다.

저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가족사진인가요?) 예, 어머니, 저, 아버지, 누나, 동생."

그래서 5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큰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 책도 있고, 한국어 배우고 싶어서… 속담도 있고."

하지만 한국 생활은 제가 꿈꿨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플라스틱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했는데 거의 매일 25kg짜리 재료를 250자루씩 날라야 했습니다.

가끔 150kg~250kg짜리 제품도 옮겨야 했습니다.

쉬는 시간은 한 시간도 주지 않았습니다.

"몸도 아프고… 병원도 계속 가야 되고 언제나 사장님한테 말했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근데 일이 있는 날엔 갈 수가 없어요."

처음 2년 반 동안 월급으로 120만 원에서 170만 원 정도만 받았습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식사비, 기숙사비 빼고 나면 월급은 너무 적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는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참아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계속 일하려면, 사장님이 다시 저를 고용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잖아요. 사장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무서워하는 거는 다시 비자 받아야 되는데 연장도 안 해주고 (그럴까 봐 겁난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끝난 날, 사장님은 저를 다시 고용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은 저에게 고마운 나라입니다.

일자리를 줬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국인들처럼 제대로 월급을 받고 인간답게 대우받으면서 일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게 참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기자 ▶

그래도 한국은 고마운 나라라고 말하는 시물,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이 이렇게 안타깝게 무너져가고 있는데요.

임금도 제대로 안 주고 재고용도 거부한 이유는 대체 뭔지, 시물이 일했던 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플라스틱 공장.

업주 측은 "코로나 19 때문에 다시 고용하지 못했다"며 "못 받은 돈이 있다면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취재가 시작되고서야 밀린 임금을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장에서는 끝까지 나몰라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한 만큼 돈을 달라,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면 돌아오는 건 폭언뿐입니다.

[고용주 B씨] "XX하고 자빠졌네. 너 일루와. 너, 내가 사장이야. 한 달 쉬고 싶어, 두 달 쉬고 싶어? 월급 안 받고 싶어?"

법의 보호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한 이주노동자의 근로계약서입니다.

월 200시간 근무라고 돼 있지만, 아래에 잘 살펴봐야 보이는 글씨가 있습니다.

"농번기나 농한기에는 협의해 근무시간을 별도로 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숨어있는 이 조항 하나 때문에 업주들은 터무니없이 긴 시간 일을 시켜도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사업주의 횡포에서 벗어나려면 또 큰 산이 하나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직접 업주가 뭘 잘못했는지를 입증해야 하는 겁니다.

이를 너무 잘 아는 업주들이 오히려 선심 쓰는 척, 근로계약을 해지해 줄 테니 그 대가로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노예계약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같은 업종일 경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전을 지금보다 쉽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영신/변호사] "직업 선택의 자유는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자유인데, 이런 것을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 ILO(국제노동기구) 등에서도 굉장히 많은 권고가 나오고 있고."

또 출퇴근 시간 등 정확한 노무관리 상황을 사업주가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업주가 법을 위반했을 때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는 지역노동센터에서 적극 개입해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은 이주 노동자들.

이들이 정당한 권리와 보상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MBC뉴스 조영익입니다.

(영상취재: 현기택 이상용 / 영상편집: 양홍석 김정은)

김아영, 조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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