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요구하다 업주 신고로 강제출국된 베트남 청년
퇴직금 요구하다 업주 신고로 강제출국된 베트남 청년 (서울=연합뉴스) 퇴직금을 받아달라고 경기도 노동부 평택지청을 찾아가 진정을 하다가 업주의 신고로 경찰에게 붙잡혀 강제 출국당한 베트남 노동자 텅 광단(32)씨. 2014.12.10 photo@yna.co.kr
퇴직금 달라고 노동청 찾아갔다 업주 신고로 붙잡혀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9일 밤 7시11분. 날 고향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를 날아오른다. 어둠에 묻힌 한국땅이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내 20대 시절을 바친 한국과도 이제는 작별이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언젠가는 떠날 땅이었으니까…

내 이름은 텅 광단(32). 단순 노동자에게 주는 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기회의 땅'에서 나는 열심히 일했다.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다. 비자 만료 기간인 4년10개월이 훌쩍 지났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돈을 더 벌고 싶었다. 아니, 고향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불법 체류자가 됐다. (2014년 10월 현재 국내 불법 체류자는 20만60명, 이 가운데 E-9 비자로 들어왔다가 불법 체류자가 된 이들은 5만3천754명이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2012년 9월부터 경기도 평택에 있는 A회사에서 일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월급은 120여만원.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잔업을 하면 150만원도 받았다. 단속에 걸릴까 봐 회사 기숙사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지만 견뎌냈다.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지난 6월 2년 넘게 일한 A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회사는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전화를 수없이 해도 그때마다 말이 달라졌다. 

회사가 망해서 돈을 못 준다고 하더니, 언제는 불법체류자니까 퇴직금 적용이 안 된다고 했다. 또 언젠가는 기숙사비를 안 받았으니 퇴직금도 못 준다고도 했다. 알고 보니 회사는 나 말고 다른 불법 체류자 노동자들에게도 퇴직금을 좀처럼 주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지역 외국인노동자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따져보니 내가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은 380만원. 석 달을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돈이다. 꼭 받고 싶었다. 나 같은 불법 체류자들도 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보장된 돈이라고 했다.

우리는 노동부 평택지청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퇴직금을 달라는 진정을 하기로 했다. 2일 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와 함께 평택지청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님도 회사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사장님이 하는 말이 이상했다. 와서 돈을 직접 받아가라고 했는데 내가 받아가지 않았다는 거다. 송금을 해 주려고 해도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이 없으니 부쳐줄 수가 없었단다. 기가 막혔다. 또 내가 불법 체류 신분이라면서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퇴직금을 주느냐고 한다. 오락가락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퇴직금 요구하다 업주 신고로 강제 출국당한 베트남인
퇴직금 요구하다 업주 신고로 강제 출국당한 베트남인 (서울=연합뉴스) 베트남 노동자 텅 광단(32)씨가 지난 2일 경기도 평택경찰서 서정지구대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이날 밀린 퇴직금을 받아달라고 경기도 노동부 평택지청을 찾아가 진정을 하다가 업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2014.12.10 <<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제공 >> photo@yna.co.kr

내 편이 되어 줄 거로 기대했던 근로감독관은 귀찮은 듯한 태도였다.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내가 불법체류자임을 안 그 감독관은 느닷없이 "그럼 이렇게 하세요. 지금 이 불법 근로자는 신고하세요. 퇴직금 지급하고. 지금 신고해, 불법을 놔두며 안 돼요."라고 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별안간 덩치가 커다란 회사 사람이 나를 붙잡고 위에서 눌렀다. 날 돕던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여성 간사 분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소리치며 항의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잠시 뒤에 마치 짠 듯이 경찰이 들이닥쳤고 나는 근로감독관 앞에서 체포됐다.  

경찰서를 거쳐 나는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사장이 내 퇴직금을 뒤늦게나마 입금해준 것이다.  

진작 퇴직금을 줬더라면 난 근로감독관을 찾아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강제출국 전날 날 도와주던 외국인노동자센터 분이 보호소로 면회를 왔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억지로 웃음을 지으려고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제는 빨리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반쯤은 진심, 반쯤은 맘에 없는 말이랄까.

떠나는 마당이지만 궁금해진다. 나 같은 불법 체류 노동자를 고용하면 불법이라는데 날 신고한 사장님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몇 시간 뒤 난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도착한다. 이제 나는 더는 불법 체류자로 살지 않아도 된다.  

(관련법에 따르면 불법 체류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3년간 외국인 고용이 불허되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A회사의 불법 외국인 고용 문제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텅 광단씨의 강제출국 직전 외국인보호소에서 마지막으로 면회한 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와의 인터뷰,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에서 체포될 당시의 녹취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ch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12/10 13:4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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