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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 서장에 있는 부다라궁에 대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유명한 부다라궁은 세계 10대 토건축의 하나입니다. 부다라궁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제일 웅장한 종교건축물의 하나로 티베트족문화예술의 보물고로 불립니다.

부다라는 범어로 불교성지라는 뜻인데 거기에는 가장 신비하고 중외 건축학자들을 감탄하게 하는 것이 바로 궁전의 담벽입니다.

전하는데 따르면 궁전의 동쪽 담벽은 라싸 일대의 석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담벽 모서리가 칼이나 도끼처럼 날이 섰습니다. 서쪽 담벽은 후장(티베트 서북지역)의 석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원만한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동쪽 벽에 양을 던지면 담 밑에 떨어진 양은 두 동강이 나고 서쪽 담벽에 달걀을 던지면 아래로 굴러도 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라다궁은 홍산 위에 세워졌는데 암층 깊이 박힌 담벽기초는 너비가 최고로 5미터 이상에 달하며 위로 올라가며 점점 엷어지는데 궁전 지붕에 이르러서는 1미터 좌우밖에 안됩니다. 부분적 담벽 몸체 안에는 쇳물을 부어 넣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 궁전이 1300여년동안 끄떡없이 서 있을 수 있게 해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부라다 궁에는 백마초담벽, 풀벽돌담벽, 소똥담벽도 있어 독특한 고원풍격을 갖고 있습니다.

기원641년, 송짠감보는 당 왕조의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뒤 기쁜 나머지 공주를 위하여 부다라궁을 지었습니다. 그때 건설된 부다라궁은 그 당시 세계에서 해발이 제일 높고 규모가 제일 큰 궁전식 건축군으로 해발3700여 미터, 부지면적은 36만 평방미터이며 높이는 9층 총999개의 방이 있는데 수행실까지 합하면 1000개 실로 장엄하고 호화롭습니다.

송짠감보가 건립한 토번왕조가 멸망될 시기 부다라궁의 대부분은 전화(戰火)에 훼멸되었습니다. 명 왕조 시절, 몽골의 구스한 무력의 지지를 받아 5세 달라이가 거랑피장왕조를 건립하였고, 기원 1645년, 부다라궁이 새롭게 건설을 시작, 5세 달라이는 거란장군으로부터 백궁 정상에 있는 일광전에 옮겨 살았으며, 1690년, 디바상제쟈췌의 주재하에 홍전의 5세 달라이 영탑전으로 수건, 1693년에 준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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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증축을 거쳐 부다라궁은 오늘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으며. 지금의 부라다궁은 부지면적이 41만 평방미터, 건축면적이 13만 평방미터이고, 주체건물은 13층으로 높이가 115미터, 전부 돌과 나무의 구조로 되었고 다섯 개의 궁전 위에는 동기와를 씌워 금빛이 찬란하고 기세가 웅장합니다.

부라다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겨울 궁전이며 과거 티베트 지방 통치자들의 정치, 종교합일의 통치 중심입니다. 5세 달라이 시절부터 중대한 종교, 정치의식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 졌으며 또한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영탑을 봉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부라다궁의 주체건물은 그 기능에 따라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달라이라마가 생활, 기거하고 정치활동을 하는 곳이고 하나는 역대 달라이라마의 영탑과 여러 가지 불전들이며 또한 부라다궁은 색상으로 홍궁과 백궁 두 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크고 작은 화강석을 쪼아서 만들어졌습니다.

첫 부분은 주로 백궁(白宮)에 집중되어 있으며, 1645년에 건설을 시작,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송짠감보 시절에 있던 관음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거대한 사찰을 지었으며 전반 사찰의 벽면은 모두 흰색으로 칠하였는데 멀리서 바라보아도 눈에 잘 띠이기에 사람들은 “백궁”이라 부릅니다.

백궁은 모두 7층으로 되었는데 4층의 중앙에 위치한 “춰친샤”의 면적은 717평방미터 38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부라다궁에서 제일 큰 궁전입니다. 역사 기재에 따르면 1653년 청나라 순치황제는 금첩과 금인으로 5세 달라이라마를 책봉, 달라이라마 전세는 모두 중앙정부의 책봉을 받아야 했으며, 티베트주재 대신은 달라이라마를 위해 등극, 친정 등 의식을 사회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역대 달라이라마가 등극, 친정대전 등 중요한 종교, 정치활동을 진행하던 장소입니다. 5,6 두 개의 층은 섭정사무실과 생활용 방이며 제일 위에 층(7층)은 달라이라마의 겨울철 궁전으로 이곳은 채광면적이 제일 커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이 찬란, 속칭 “일광전”이라 부릅니다.

궁전내부의 시설은 화화롭고 금반과 옥사발, 구슬과 보석으로 차있어 주인의 고귀한 지위를 보여주며 궁전밖에는 커다란 베란다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전반 라싸 성을 굽어볼 수 있습니다. 멀리로 웅기중기 뭇 산들, 아름다운 라싸허가 비단띠처럼 하늘가로부터 휘날려옵니다. 가까이에는 밭과 푸른 나무와 농촌가옥들, 또 고로한 대소사의 금빛 나는 지붕이 보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1690년에 건설된 홍궁입니다. 청나라 강희 황제는 특별히 내지의 한족, 만족, 몽골족 장인 100여명을 티베트에 파견하여 부라다궁의 확건공사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홍궁의 주체 건물은 여러 불당과 달라이라마들의 영탑이다.

궁전 내에는 8개의 달라이라마들의 법체가 담긴 영탑이 있는데 그 중 5세 달라이라마의 영탑이 제일 크고 제일 화려합니다. 높이는 14.85미터이고 몸체는 전부 금빛가죽으로 감았으며 구슬과 옥을 박았는데 황금 11만 여냥과 진주, 보석, 산호, 호박, 마노 등이 1만8677개가 된다고 합니다.

홍궁의 최대 궁전은 씨따땐인데 면적은 725평방미터, 궁전 내부의 중앙 윗부분에 건륭황제가 하사한 “용연초지”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달라이라마 봐좌가 있습니다. 궁전안에는 청나라 강희황제가 보낸 대형 금장 한쌍이 있는데 이는 부라다궁의 보물의 하나입니다. 수승삼계전은 홍궁에서 제일 높은 전당입니다. 한 켠에 있는 경서대에는 옹정황제가 7세달라이라마한테 하사한 베이징판<단주얼>경서가 있습니다. 홍궁의 제일 서쪽은 13세 달라이라마의 영탑이 있는데 높이가 14미터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전내의 단성은 20만여개의 구슬을 꿰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부라다궁 내부의 정교하고 호화로운 장식은 티베트 족 예술의 보고이고 또한 옛날 티베트귀족과 인구의 95%이상을 점하는 농노 사이의 거대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홍궁은 주요하게 종교활동장소이며 영탑 제전입니다. 그러나 백궁은 달라이라마의 거실이며 정채활동중심입니다. 홍, 백 두 가지 색상은 홍연일체를 이루며 고대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합일의 사회특징을 보여줍니다. 백궁이 낙성된후 5세 달라이라마는 철방사에서 이곳으로 옮겨 세상을 마칠 때까지 있었습니다. 그뒤 역대 달라이 라마들은 모두 부라다 궁을 자신이 거주하고 종교활동을 벌리는 곳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여 부라다궁은 라마 및 그 신도들이 최고의 예를 보내는 성지로 되고 있습니다.

300여년이래 부라다궁은 티베트의 “정교합일”의 정권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지극히 풍부한 역사문물과 고예품들을 수장, 티베트의 역사문화예술의 박물관으로 불립니다.

그 중 5만여평방미터의 색조가 아름답고 인물형상이 살아 있는듯한 벽화들은 부라다궁의 최고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제일 빠른 “취제차부”불전에는 1300여년전의 벽화가 오늘까지도 그 색조가 그대로이며 부라다궁의 벽화는 종교이야기, 풍속과민정, 인물전기, 역사사건 등 4개 부분으로 나뉠수 있습니다.

불상, 불교이야기를 제외하고도 티베트에서 남녀노소 알고 있는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하다>는 전설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상 부라다궁의 확건장면도 벽화는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시집오는 벽화는 기원 7세기 무렵의 한족과 티베트민족의 화목한 정경을 보여주며 서쪽 대전의 한 벽에는 1652년 5세 달라이라마가 베이징에 가 순치황제와 만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13세 달라이라마 영탑전에는 13세 달라이라마가 광서황제와 자희태후를 만나는 장면도 그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