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키우는 엄마는 다 안다. 아들 잔소리가 시집살이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둘째 녀석이 냉장고에 붙여놓은 쇼핑 목록을 보고 잔소리 준비 자세로 앞에 섰다.

 

  “엄마, 살색이라는 말은 쓰면 안 되는 거야. 세상에는 우리랑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

 

  쇼핑 목록에 써 넣은 ‘살색 스타킹’이 화근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살색이라고 하면 무슨 색깔인지 알아들을 수 없잖아. 이제 우리도 다문화, 세계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알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훈계는 끝이 없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에 대해 배우며 살색에 대한 토론을 했던 모양이다.

 

 

<그림 강우근>

 

 

  살색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 것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나인을 포함한 외국인 등이 “크레파스와 물감에 있는 살색이라는 색명은 특정한 색만이 피부색이라는 인식을 전달하며, 황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차별행위”라며 시정을 원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일본의 공업규격 색명을 단순히 번역해 한국산업규격(KS)상 살색이라고 명명했고, 크레파스 생산업체들은 KS에 근거해 살색으로 표기해왔었다.

 

  2002년 기술표준원은 살색이 “황인종을 제외한 다른 피부색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평등권 위배”라는 주장을 인정하고 연주황으로 개정고시 했으며, 다시 “연주황은 느낌이 모호하고 한자라서 어렵다”는 주장에 따라 살구색으로 개정했다.

 

  이렇게 부모 세대의 크레파스 속에 등장하던 살색은 불명예(?) 퇴진했고, ‘살색이라는 표현은 국제화로 국가 간·인종 간 교류가 활발한 21세기에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확대하고 시대적 흐름에 반한다’는 기사를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봤다.

 

  그러나 이름이 바뀐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살색은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생각난 김에 아이들 책상을 뒤져봤다. 크레파스나 색연필에는 연주황색 혹은 살구색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살색 테이프나 살색 마커는 아직도 존재했다. 문구류뿐 아니다. 살색 스타킹이나 비치지 않는 살색(스킨색) 속옷, 살색 반창고, 살색 화장품, 식물도감 속 살색구멍버섯까지. 언론도 한몫하고 있다. 광고를 비롯해 신문이나 방송들은 스타 ○○의 살색 드레스 등 살색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들이 낫다. 학교나 책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피부색만이 살색이 아니라는 것을, 살색은 사람의 수만큼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머리로는 차별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른들이 습관처럼 쓰는 살색에 아이들도 점점 물들어가고 있다. 색연필 색명만 살구색으로 바꿔놓고 어른들은 계속 살색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내 외국인 숫자 126만. 더 이상 우리의 해묵은 관습이나 편협한 습관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 아이의 학교에도 살구색이 아닌 피부색을 가진 친구가 있다고 한다. 아이가 그 친구에게 살색 색연필이라고 말하기 전에 나부터 고쳐나가야겠다. 당장 오늘부터 살색 스타킹을 살구색 스타킹으로 부르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걱정이다.

 

 

글쓴이 유수정 님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지역 노사민정 협력 우수사례> <희망노트> 등을 집필하고, 공저로 <말문을 열어주는 이야기 창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