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눈물 뒤로 하고…인신매매국가 평가 1등급, 당당한가요
 
이소연 / 기사승인 : 2021-07-13 06:10:02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 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가창 실력 검증도 통과했다. 성공을 꿈꾸며 비행기에 올랐다. 실상은 달랐다. 성매매와 유사성행위를 강요받았다. 근로계약서는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낯선 땅에서 선택지는 없었다. 지난 2019년 경기도의 한 업소를 탈출한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인신매매에서 안전한 국가일까. 협소한 법 적용으로 인해 ‘사각지대’를 허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일 ‘2021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각국의 인신매매 감시와 단속 수준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영국, 호주, 프랑스 등과 함께 1등급을 받았다. 인신매매 감시·단속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03년부터 19년째 1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예술흥행비자로 인한 성매매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감독 이고운)의 한 장면. 
실제로는 어떨까. 인신매매 사각지대는 전국 곳곳에 분포해 있다. 12일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은 351곳이다. 미군기지가 위치한 지역과 항구 등에 밀집해 있다. 외국인만 이용할 수 있다. ‘예술흥행비자(E-6-2)’로 입국한 이주여성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고용됐던 이주여성들의 증언은 달랐다. 일부 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제한다는 의혹이다. 이주여성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경기 한 업소에서 근무했던 이주여성들은 일정 포인트를 채워야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주여성을 지명한 손님이 시킨 음료·술의 값을 포인트로 전환하는 구조다. 그러나 음료와 술만으로는 약속된 포인트를 채울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성매매·유사성행위를 해야 했다. 

성적 행위는 업소 구석진 곳에서 이뤄졌다. 칸막이나 방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행위를 지켜보는 손님들도 있었다. 2019년 성매매 업소를 탈출한 한 여성은 “내가 짐승이 된 것 같았다”며 울먹였다. 

업무시간 외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증언도 있다. 여권·외국인등록증 모두 업주가 갖고 있었다. “한국은 산이 많아서 너네 파묻어도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망가면 너네만 감옥 가고 본국으로 돌아갈 뿐이다” 등의 협박도 일상이었다. 

성매매 피해 이주여성을 돕는 김태정 두레방 활동가는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한 이주여성들이 성매매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일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한국에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뿐만 아니라 마사지사로 일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부 이주여성들도 비슷한 피해를 받고 있다. 김 활동가는 “취업 사기를 당한 이주여성들은 도망가고 싶어도 선불금·여권압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도망쳤지만 결국 업주에게 잡힌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불법을 강제하는) 업주들 대부분은 성매매 강요를 면피할 근거를 만들어 둔다”며 “여성들의 진술만 있기에 처벌이 어렵다”고 전했다. 
 
 
협소한 인신매매 규정은 처벌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03년 발효된 UN ‘팔레르모 의정서’에서는 “착취를 목적으로 상대방을 속이거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해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행위”를 인신매매라고 봤다. 성매매, 노동, 장기매매적출 등을 목적으로 위협·무력행사·납치·사기·기만해 사람을 모집·운송·이송·은닉·인수하는 행위를 뜻한다. 반면, 지난 2013년 신설된 형법상 인신매매는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로 정의돼 있다. 사안에 따라 징역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국제 기준 보다 좁게 해석한 개념이다.
 
인신매매를 범죄로 인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다른 범죄에 비해 발생 건수도, 기소 건수도 현저히 적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2019년 4건의 형법상 인신매매 범죄가 발생했다. 이에 가담한 24명이 검거됐다. 다만 기소는 2건에 불과했다. 2018년에는 5건의 범죄가 발생, 4건만 기소됐다. 2017년에는 3건의 범죄가 발생, 총 5건이 기소됐다.  
 
지난 3월 1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인신매매·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했다. 지난 4월 ‘인신매매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인신매매방지법)’이 공포됐다. 오는 2023년 1월부터 시행된다. 해당 법에서는 인신매매를 ‘성매매 착취,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 착취를 목적으로 한 행위’로 명시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내용도 마련됐다. 다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기존 법률로 처벌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장 전문가들은 인신매매방지법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 활동가는 “인신매매는 중대범죄다.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포된 법은 피해자만 보호하고 가해자와 구조는 건들지 않겠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신매매국가 평가 1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 없는 법을 만든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인신매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만들어진 법인데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 법이 얼마나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효율적일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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